팔란티어, 방산회사인가?
‘빅데이터’, ‘AI’, ‘국가 안보’, ‘미 국방부 계약’—이 단어들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기업이 있다면, 바로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일 것이다. 테크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오늘날의 팔란티어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다. 데이터 분석 기술을 무기로 삼아 방위 산업, 정부기관, 민간기업까지 파고든 팔란티어는 과연 '방산회사'로 분류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팔란티어의 정체성, 국방과의 관계, 사업 영역의 확장 방향 등을 중심으로 그 실체를 살펴본다.
1. 팔란티어의 출발점: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는 2003년 피터 틸(Peter Thiel)을 포함한 공동 창업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원래 목적은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CIA의 벤처 투자 기관인 인큐텔(In-Q-Tel)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이때부터 정부기관과의 긴밀한 협업이 시작됐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Palantir Gotham과 Palantir Foundry다. Gotham은 주로 국방, 정보기관, 법 집행 기관이 사용하는 플랫폼이며, Foundry는 민간 기업이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데 사용된다. 즉, 팔란티어의 핵심 기술은 데이터 분석이며, 인공지능 기반의 의사결정 보조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2. 국방 산업과의 밀접한 관계
팔란티어가 ‘방산회사’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국방부와의 굵직한 계약들 때문이다. 팔란티어는 미군의 전장 인식 시스템 구축, 미 공군의 로지스틱 관리, 미 해군의 데이터 통합 프로젝트 등 여러 분야에 관여하고 있다.
- 2020년 미 육군과의 계약: AI 기반 전술 데이터 분석 시스템 제공, 계약 금액은 수억 달러 규모
- 2021년 우주군 계약: 위성 기반 정찰 데이터 분석 시스템 구축
- 2022년 국토안보부와 ICE(이민세관집행국)에 데이터 시스템 제공
특히 팔란티어는 기존의 방산업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군사 기술에 접근한다. 무기나 하드웨어를 생산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기반의 전쟁 지원 기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방산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3. 팔란티어는 '방산회사'인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팔란티어는 전통적인 방위 산업체인가? 정답은 “부분적으로 그렇다”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방산회사는 무기, 군용 장비, 함정, 항공기 등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노스럽 그러먼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팔란티어는 물리적 무기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전쟁에서 '정보'와 '데이터'는 무기만큼 중요하며, 심지어 더 큰 전략적 자산이 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팔란티어는 '디지털 방산업체'로 분류될 수 있다.
실제로 팔란티어는 자사 소프트웨어가 군의 작전, 정보 수집, 전술 판단, 물류 계획에 핵심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미래형 국방 파트너”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2020년 이후 팔란티어의 수익 구조를 보면
전체 매출의 약 절반 이상이 정부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이 국방 및 안보 관련 계약이다.
4. 민간 시장으로의 확장, 그리고 균형 전략
한편, 팔란티어는 방산 중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간 시장 확장</strong에도 힘쓰고 있다. 에너지, 금융, 헬스케어, 물류, 제조업 분야에서 Palantir Foundry를 활용해 데이터 기반의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고 있으며,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 BMW: 생산 라인 데이터 통합 분석
- BP: 석유 및 가스 추출 과정 데이터 최적화
- Merck: 신약 개발을 위한 생물정보 분석
이러한 전략은 팔란티어가 지속 가능한 수익 기반을 다변화하려는 시도이자, 방산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다. 하지만 투자자나 언론의 관심은 여전히 팔란티어의 '정부계약'에 집중되고 있다.
5. 미래의 팔란티어: 정보전의 선두주자?
팔란티어의 미래는 곧 '정보 전쟁의 시대에서 얼마나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미 국방부뿐 아니라 NATO, 영국 국방부, 우크라이나 정부 등과도 협력하고 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실전에서 사용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향후 팔란티어는 단순히 '방산회사'가 아니라, 정보전, 사이버 전쟁, 인공지능 전장 솔루션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회사를 기존의 방산업체처럼 분류하기보다는, '디지털 안보 인프라 기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결론: 팔란티어는 방산회사인가?
결론적으로 팔란티어는 전통적인 무기 제조업체는 아니지만, 현대 전장에서 핵심적인 소프트웨어와 정보 시스템을 제공하는 디지털 방산기업이다.
국방, 안보, 정보기관과의 긴밀한 협업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민간 영역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방산의 정의가 ‘전쟁 수행 능력을 강화하는 모든 기술과 인프라’까지 포함한다면, 팔란티어는 그 중심에 있는 기업 중 하나일 것이다.